선택은 인간이 받은 형벌 중 가장 세련되고 악질적인 고통이지! 물론 세상에는 꼭 시험 문제처럼 두 개 중 하나가 헷갈리는 문제가 너무 많아. 나도 알아, 이봐, 나도 고등수용소를 벌써 3년 전에 졸업한 몸이라구. 요컨대 내 말은 우울할 때 우울하더라도 발랄하게 우울하자는 거야. 우울함에 독을 뿌리고 명랑해져라.

선택은 인간이 받은 형벌 중 가장 세련되고 악질적인 고통이지! 물론 세상에는 꼭 시험 문제처럼 두 개 중 하나가 헷갈리는 문제가 너무 많아. 나도 알아, 이봐, 나도 고등수용소를 벌써 3년 전에 졸업한 몸이라구. 요컨대 내 말은 우울할 때 우울하더라도 발랄하게 우울하자는 거야. 우울함에 독을 뿌리고 명랑해져라.
그의 눈에는 이미 친구 싯달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얼굴들이 보였다. 수많은 얼굴의 긴 행렬, 강물처럼 흐르는 수백 수천의 얼굴들이 한결같이 나타났는가 하면 사라졌고, 그러면서도 역시 모두가 동시에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얼굴들은 모두가 끊임없이 변하여 새로운 얼굴이 되었고, 그 얼굴들은 역시 모두 싯달타의 얼굴이었다. 그는 물고기의 얼굴을 보았다. 무한히 고통스럽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한 마리의 잉어, 찢어진 눈을 하고 있는 죽어가는 물고기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주름투성이로 잔뜩 찌푸리고 우는 새빨간 갓난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한 살인자의 얼굴을, 그 살인자가 단도로 사람을 찌르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와 동시에 이 살인자가 결박당하여 꿇어앉은 채 형리의 내리치는 칼에 목이 달아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광적인 사랑의 교전 자세를 하고 있는 벌거숭이 남녀의 몸뚱어리를 보았다. 그는 말없이 싸늘하게, 허무한 모습으로 사지를 뻗고 있는 시체를 보았다. 그는 동물들의 머리를 보았다. 산돼지의 머리, 악어의 머리, 코끼리의 머리, 황소의 머리, 새들의 머리들. 그는 신들을 보았다.
출처: p.190. 헤르만헤세, 싯달타, 소담출판사.